2010년 12월 7일 화요일

비정규직

해당 기사 원문 : http://t.co/moQu3Tv

 

 

도대체 비정규직이란 명칭은 언제 생겼을까?

노예, 평민, 귀족

천민, 양민, 중인, 사대부

단순이 이렇게 나뉘었던 신분제도가 다양한 직업으로 나뉘면서, 직업군별로 계급이 생겨버린건 아닐까?...

 

서민과 중산층 부유층

 

하청/비정규직/정규직...

 

 

요즘 재밌게 보고있는 시크릿가든에서 주인공 현빈이 하는 말이....

그들은 구매를 함으로써 철저한 불평등과 차별을 원한다. 군림하고 지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철저하게 차별받길 바란다. 그게 그들의 순리고 상식이다.

...

 

군림하고 지배할 수 없다면, 철저하게 차별받기 원한다는 드라마의 한 대사에서...

왠지 씁쓸한 현실을 느낀다...

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나 혼자, 혹은 다함께....

이외수님의 Tweet을 읽다보니, 딴 생각이 든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혼자선 할 수 없는 일... (함께할 수 있는 일...)


그래.
일을 나누자면 두 범주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똑같은 업무강도라도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래...
혼자서 할 일을 선택하겠지.....

서로의 의사소통마저 귀찮아하는 어이없는 세상...
그게 바로 우리인걸 어떻하는가.....


애들이랑 나가서 노는 것 보다도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집에서 가족들이랑 이야기하기보단 앉아서 TV와 컴퓨터를 하고
의견차이가 생기면, 대화로서 풀기보다는 고성과 폭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그게 바로 우리의 현 주소인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선호해보자.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서로를 소망하게 되는

그런 모습을
지향하는 우리를

기대해도 될런지....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종교다원론자 변선환',사후 10년만에 사실상 복권되다 - 최서영 [프레시안 2005.09.05]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몰고온 생지옥에 절규하는 미국 뉴올리언즈 주민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수십만 명을 사망케 한 서남아시아의 쓰나미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망언으로 새해 벽두부터 논란을 일으켰던 개신교 감리교단의 대형교회, 서울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다.
 
  타인의 고통을 두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판'으로 둔갑시켰던 그가 기독교 국가에서 일어난 이번 재앙을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김 목사와 관련해 생각나는 일 또 한 가지. 그의 비상식적인 '쓰나미 심판론'은 즉각 인터넷을 타며 비난 여론의 표적이 됐지만, 그가 10여 년전 "기독교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교리를 부인했다"며 '출교(黜敎)'를 주도했던 한 양심적 신학자의 복권에는 훨씬 더 긴 세월이 걸렸다.
 
  당시 김 목사 등의 여론몰이에 '출교' 당했던 고 변선환 감신대 학장은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신학적인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했던 것. 종교간 화해와 다원성에 대한 그의 주장은 성전(聖戰)의 이미지를 차용한 전쟁과 테러리즘으로 피범벅이 된 오늘날의 세계에도 충분히 유의미하게 읽힌다.
 
  그리고 바야흐로 한 신학자가 온몸으로 뿌린 밀알은 현재 한국 기독교계의 강력한 근본주의적 토양을 뚫고 힘겹게 새싹을 밀어올리는 중이다.
 
  1992년, 유례없는 한국형 종교재판과 '출교'형
 



80년대에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가 아닌 신중심",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故 변선환 학장의 대담한 '선언'은 당시 신학자들을 보수와 진보 혹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로 갈라세운 신학적 분수령이 되었다. ⓒ변선환아키브



  13 년전인 1992년 5월 7일, 감리교 서울연회 재판위원회(재판장 고재영 목사)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부인했다"며 변선환 당시 감신대 학장에게 감리교회법상 최고형인 '출교' 형을 내렸다. 이는 중세의 '파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교인의 자격을 빼앗고 당사자를 감리교단 밖으로 내보내는 형벌이었다.
 
  보수교회 목사들이 주도한, 감리교단의 이 '한국형 종교재판'은 한국개신교 200년 역사상 유례없는 것으로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으며, 재판 결과에 반발하는 감신대 학생들과 상당수 목사들로 감신대는 장기간 분규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변 학장은 최후진술에서 "흑백논리만이 횡행하는 감리교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기독교는 더 이상 정복자의 종교가 아니며 전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종교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감리교의 세계적 추세"라고 역설했다.
 
  "타종교를 무조건적으로 악마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개종 중심의 선교 신학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다. 지구촌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현실과 그 진리성을 인정하되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종교를 배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새로운 신학이 정립돼야 한다"는 그의 신학적 양심에 한국 감리교계는 '사탄의 종'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였다.
 
  '다른 종교에도 진리는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는 2000년간 배타적 선교 정책을 고수해 온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 여전히 당혹스런 과제였으며, 더욱이 '교회 안에서만 들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대한 독점중계권을 쥐고 있었던 목사들에게는 실질적인 '위협'이었던 것이다.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는 '적'이 필요했다"
 
  ' 다름이 곧 틀림이 되는 차이'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확보하는 모든 근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 또한 '적'이 필요했다. 또한 '우리'와 '저들'간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자 역시 '사탄'이 되어야 했다. 변선환 학장은 그렇게 '사탄'이 되고 말았다.
 
  당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매주 발행하는 <불기둥>이라는 팸플릿에서 "한때 수천 명씩 모이던 구라파 교회들이 관광 장소로 전락한 것은 수십 년 전부터 횡행하던 다원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사탄 때문"이라며 합리주의, 사회복음 운동, 실존주의 철학, 행동주의 신학, 과학적 방법 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사상가들을 공산주의자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으로 가면 좋으련만 가지 않고 국가를 혼란케 하는 것이나 기독교의 탈을 쓴 무신론자들이 교회 안에 존재하면서 파괴하려고 드는 것은 사탄의 간계"라며 "이들이 교회 밖으로 나간다면 학문의 자유를 가지고 무슨 소리를 하든 개의치 않는다"고 성토했다.
 
  그의 논리 안에서 교인의 숫자는 사탄의 득세와 반비례하며, 교회 밖의 '적'은 오히려 교회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교회 안의 이질적 목소리는 용납 못한다는 폐쇄성과 극단적인 이분법이 가득했다.
 
  그 러나 변 학장의 후학들이 최근 펴낸 추모논문집 <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대한기독교서회)에서 최대광 감신대 교수는 "복종보다 합리적 사고를, 개인구원보다 사회복음을, 내면적 초월성보다 사회참여를 중시한다면 보수교회들은 이를 여지없이 교회를 파괴시키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신학으로 딱지 붙이며 대중을 훈련시켰다"며 "변선환 학장은 정확히 이 대척점에서 자아와 타자의 차이를 해소하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종교는 무섭지 않은데 한국 교회는 무섭다"
 
  이렇게 개신교의 배타성과 종교간 갈등에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고 변선환 학장은 1927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자랐다.
 
  감 신대와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을 거쳐 미국 드류대와 스위스 바젤 신학부에서 공부한 그는 칼 야스퍼스, 불트만등의 신학 사상과 선불교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으며 한국에 돌아온 1970년대 후반부터 국내의 대표적인 불교철학자 이기영 박사와의 폭넓은 대화를 통해 기독교와 불교 등 모든 종교의 공존 가능성을 역설했다.
 
  또한 80년대 초 자신의 신학적 관점이 여전히 기독교를 불교, 유교와 같은 아시아 종교보다 우월한 위치에 두는 서구적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한국에서 신학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성찰해 "기독교 혹은 서구에 감겨져 온 한국 종교가 거꾸로 한국의 다양한 종교에 되감겨져야 한다"는 '토착화 신학론'을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학국적 신학이 타파해야 할 우상으로서의 배타적인 교회 중심주의를 비판한 것은 물론이다. 그는 "교회 자체를 계시와 은총의 통로로 이해함으로써 세상과 교회의 단절을 초래하게 됐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티없이 파아란 가을하늘이 고운 5일, 변 학장을 기리는 사람들이 '서거 10주기'를 맞아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 웨슬리 채플에 모였다.
 
  감 신대의 총동문회(회장·최성봉 목사)와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소장 이정배 교수) 주관 하에 열린 학술강연회에는 고인을 위해 후학들이 마련한 추모논문집 <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도 선보였다. 그의 뜻을 잇는 제자들이 '변선환 아키브'를 만들어 그의 정신을 잊지 않고 연구해 온 결실이었다.
 
  이들의 정성에 감신대의 김외식 총장, 이종복 이사장이 이날 변 학장의 10주기 추모 및 추모논문집 출간 감사예배에서 설교와 축도를 기꺼이 맡았으며, 개신교회의 원로인 강원용 목사와 이현주 목사가 각각 축사를 했다. 김경재 전 한신대 교수도 추모논문집 서평으로 동참했다. 변 학장이 '출교' 10년 만에 사실상 '복권'되는 순간이었던 셈이다.
 
  제자들이 집필한 추모논문집 서문 중의 한 구절이 매섭다.
 
  "선생님의 신학을 이단으로 정죄해 출교시킨 후 과연 감리교회는 성장하고 풍성해졌나. 이제 사람들은 최고 심판관으로 변신한 교회가 무섭다고 한다. 종교는 무섭지 않은데 한국교회가 겁이 난다고 한다. 신학자들도 글 쓰거나 강연할 때 교회 눈치 살펴야 할 지경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가장 기본적인 세상의 합리성과 상식이나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변 학장의 '사실상 복권'과 함께 우리의 개신교회는 이제 비로소 세상을 향해 자신있게 '회개하라'고 외칠 수 있는 출발점에 선 것인가?

최서영/기자

이웃 없는 종교의 우울함 - 김진호 [한겨례 2010.11.09]

[야! 한국사회] 이웃 없는 종교의 우울함 /김진호
자기중심점 편집증이 ‘미친 십자군들’ 불교 사찰 난입으로

이웃을 ‘적’으로…교회가 시민사회로부터 ‘왕따’ 당하는 이유

1991년 요맘때였다. 학문의 폭이나 깊이에 서 당대 한국 최고의 신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변선환 당시 감신대 학장을 정죄하는 교단 총회의 결의가 있었다. 즉각 교수들과 학생들,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의 항의와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또한 안병무·서광선·이재정 등 교단을 망라한 한국의 대표적 신학자들이 공동으로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21일, 대형교회 목사들이 중심이 된 대한감리교회 교리수호대책위원회가 발족하였고, 총회의 징계 결의가 준수되지 않으면 교단 분열을 각오한다는 성명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변선환 교수는 교수직을 면직당했고 목사직이 회수되었으며 출교 처분되어 교인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자행한 신학자에 대한 징계 사례 중 가장 극한적인 경우에 속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노신학자에게 이런 가혹한 처결을 교단 분열 운운하면서까지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신학적 신념이 자기들의 신앙관과 다르다는 이유, 놀랍게도 이것이 전부다.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그것은 “사탄과의 싸움”이었다.

도대체 저들을 그토록 격동시킨 신학적 신념의 내용은 무엇일까. 선생은 자기의 신학을 ‘타종교의 신학’이라 불렀다. 자기의 언어와 관행,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만남의 과정과 태도를 강조하는 신학이다. 해서 타종교를 자신과 닮도록 동화시키거나 타종교에서 자기와 닮은 요소를 찾아내어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의 언어와 관행을 존경하고 그 ‘차이’에서 서로 배움을 얻는 만남의 과정이 중요시된다. 나아가 종교들이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타자를 함께 바라보고 자신의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러한 성찰에 이르는 것에 관한 신학적 담론이다. 나는 아직도 그의 타종교의 신학이 종교간 대화모델 가운데 가장 훌륭한 관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감리교회의 교리 수호를 강조하는 목사들은 이러한 신학을 ‘사탄의 행태’라고 보았다. 물론 이것은 그 교단 권력자들만의 생각은 아니다. 한국 교회 일반은 자기 외에는 모든 신앙과 신념을 폄하하고 심지어 악마화하기도 했다.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런 고강도의 자기중심주의적 편집증을 신앙이라고 오인해온 사례가 무수히 많다.

바로 그러한 신앙적 편집증의 한 증상이 최근 몇몇 불교 사찰에 난입해서 그 종교를 모욕하는 ‘미친 십자군들’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물론 알다시피 이런 행동이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이제까지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런 식의 무례함을 수없이 벌여왔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신앙을 모욕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중요한 덕목임을 끊임없이 강변해왔다. 해서 수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이웃이 삭제되었다. 세상은 ‘우리’와 ‘타자’로 이분되었고, ‘우리’에게 동화되지 않은 타자는 ‘적’이다.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이 신앙의 문법처럼 한국 교회를 둘러싸고 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한국 교회 일각의 사고방식과 냉전적 국가주의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간의 끈질긴 밀월관계는 바로 이런 생각의 유사성과 결부되어 있다. 교회는 이웃을 적으로 상상하고, 한국 사회는 ‘우리’의 외부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교회와 국가의 극우 냉전주의자들은 공존의 논리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2010년 10월 27일 수요일

봉은사 관련 뉴스를 보면서...

요즘 봉은사와 관련된 뉴스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과 관련이 있다.
또 하나는 찬양인도자학교와 관련된 뉴스....

그래.....
다들 믿고있는 무언가가 있겠지....

그런데말이지....
이건 좀 아닌거 같다.


교리적인 이유라고 둘러대며 다른 모습을 한 자를 공격하고,
후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사과하는 모습.

이쪽이고 저쪽이고 결국엔 다 같은 하늘아래 사는 우리인 것을....
결국 편을 갈라....
반(反) 다원주의라는 이름으로 멸시하고 핍박하려고 하는 손길들...


그래.
하늘에 계신 높은 분께서, 결국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이 이거였는가....
고작 이런 일을 하라고 직접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것인가.....

어이없음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그랬다고 선긋기를 하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내 자신을 돌아다보자.

자존감. 자만심이란 이름 아래...
상대방을 부정하려고만 하였는가.


상대방을 낮추어야만 그 분이 높아지는가?

그 분은 상대방을 낮추었을때 높아지는 분이 아니다.
I am that I am.... 스스로 존재하신다는 그 분.
상대방을 낮추었을때 높아지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이라는 것...
그리고 상대방을 낮출 때 함께 낮아지는 것은...
내 인격이라는 것을......



2010년 10월 18일 월요일

대표기도. 담대히. 그리고 가족

처음으로 '대표기도'라는 것을 했다.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면, 내가 생각하기에 함께 생각하고 나누어야 할,
예배를 준비하며 앞서 생각해야할 내용을 나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저 막막했지만, 미리 적어놓다보니....
기도하다보니 금세 시작했다....

Heb. 10:35-39
담대히 나가라는 말씀....
그 말씀때문에.
내가 용기내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2010년 9월 8일 수요일

다시 처음으로?...

조용했던 첫 모습
아무 소리없이

울림없는 그 모습 그대로.


처음처럼






집에 남은 처음처럼....
뜯고 자야겠따....

2010년 8월 31일 화요일

과유불급... Exodus 16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침이 부족함 만 못하다는 뜻으로....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는 말이다...

오늘 읽던 본문 중에서, '과유불급'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본다.

야훼의 명령이니 저마다 먹을만큼씩 거두어들여라.....
(중략)
결국 저마다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였던 것이다.모세는 그들에게 먹고 남은 것을 그 다음날을 위하여 남겨두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하지만 꼭 이렇게 시켜도, 하지말란거 꼭 하는 사람 있다.

그런데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이튿날 아침, 그들이 남겨둔 것에서는 구더기가 끓고 썩는 냄새가 났다.


주님은 직접 과유불급의 예를 보여주신다...

과유불급은 무언가의 양이 많은 것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양을 모으려는 인간의 마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다다익선'이라는 말로 그 마음을 선(善)으로 포장하지만,
선을 가지고 행한 일이 아니기에, 무언가를 가지려고 하는 마음은 없느니만 못하게 된다.


사람은 저마다 붙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
가지고 가고 싶은 것들이 있고
그 것이 없다면
내가 죽거나
내가 의미없어 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인간이다...

그런 내게도 놓아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려 놓는다'는 말이
다시금 상기되는
비가 내리는 밤이다.

2010년 8월 27일 금요일

씁쓸한 소식...


트위터에 이런 글이 올라와버렸다.
물론 저 @namocean 님의 교회는 아니다. 어떤 글의 일부부를 적어놓고 링크 걸어놓으신 것이다.

전문을 읽어보니 씁쓸함만 감돌았다.
과연 저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일까?
어쩜 TV뉴스와 신문에서 자주 보던 모습이 교회간에 발생해야 하는 것일까?....

2010년 8월 4일 수요일

아무 것도 모르는 호이가 보는 현대/외환 충돌

뭐 아는 사람만 알겠지만, 요즘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에 말이 많다. 바로 재무 구조 개선 약정 때문인데, 이게 그렇게 만만히 볼 문제가 아니다. 얼핏 보면, 주 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나, 당사자인 현대그룹 간의 사소한 다툼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실상을 들여다보면 약간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현대그룹의 속 사정을 파악해보자.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주), 현대엘리베이터(주), 현대증권(주), 현대아산(주), 현대로지엠(주) 을 포함한 12개 사로 이루어져있다. 주력 회사는 단연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엠이고, 이 세 회사는 순환출자구조로 엮여있다.

순환출자란? Click


그런데 문제는 이 현대상선의 지분구조다.

현대상선 지분 Click


순환출자 구조상 한 회사가 부도가 나거나, 아니면 총수의 최대주주 자격이 상실될경우 나머지 회사들의 경영권을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세 회사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현대상선의 경영권 확보는 필수다. 게다가 현정은회장의 취임 직후 발생한 KCC와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흔들기가 재현될 수 있는 만큼 현회장으로선 지분확보에 사력을 다해야만 하므로 눈독을 들이는 것이 현대건설 지분이다.현대건설은 현정은 회장이 취임이후 줄곳 인수를 희망하고 있는 회사이다. 옛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그 모태인 현대건설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현대그룹은, 옛 현대그룹의 정통성과 경영권방어 모두를 확보할 수 있다.그래서 현대건설 채권단이 현대건설 지분 매각을 발표하자 현대그룹에서는 현대건설 인수의사를 타진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환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하는 현대그룹채권단은 현대그룹에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요청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이란 부실경영의 우려가 있는 대기업 그룹이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주거래은행과 같은 채권단 등과 맺는 양해각서를 말한다.이 약정을 맺을 경우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부실 계열사 정리·부채 감축과 같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이를 실행하지 못하면 채권단의 자금 지원이 중단될 수 있다. 이 부분에 바로 현대그룹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대그룹의 입장에서는 약정을 체결할 경우 인수에 필요한 자금확보에 문제가 생길뿐만 아니라 있는 기업들도 떨궈내야 할지도 모르기에 체결하지 않고 버티는 상황이다.
 게다가 작년의 경우 해운 경기가 매우 나빠서 현대상선의 적자가 컸지만 그 와중에도 세계2위의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고, 또 올 2분기에는 Earning Surprise까지 낸 상황에서 부실기업으로 몰리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통상 해운사들은 선박을 발주할 때 20~30%은 자기 자금이고, 나머지 부분은 은행에서 대출(선박금융)하는데 그런부분까지 일방적으로 채무로 잡혀있는 점도 이번 구조개선 대상의 문제점이라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한진해운의 경우에는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이후 해운업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올해 선박 발주를 하지 못하고 있다.

 허나 외환은행의 입장은 좀 다르다.
 우선 외환은행의 경우에는 현대그룹의 문제는 현대상선 뿐만 아니라 대북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데에 따른 현대아산의 적자도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재무지표로 드러나는 부채비율은 284%에 달한다. 또한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후 유동성위기를 볼때 외환은행 입장에서는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가 탐탁치 않아 보일 수도 있다.
 외환은행에 이면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한 이후 줄곳 외환은행 매각작업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특히나 요즘 론스타의 탈세문제 때문에 론스타는 하루빨리 외환은행을 털어내고 뜨고 싶은데, 이왕 털어내는거 값어치나 좀 더 올리고 털자는 심정인 것 같다.
 론스타가 대주주로 있는 외환은행은 현대건설에 대출해 줬던 돈을 출자전환해서 현대건설 주식을 금융기관중에서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다. 이 지분은 처분한다면 외환은행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고, 그것은 외환은행의 주가와 론스타의 시세차익 + α 를 올리는데도 영향을 끼질 것이다. 게다가 현대건설과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는 범 현대가에게 막대한 프리미엄을 받으면서 양도할 수 있기 때문에 외환은행, 즉 론스타로서는 한시바삐 현대건설을 처분하고 싶을 심정일 것이다.
 현대그룹 전반에 대한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로 대출금 회수를 들어간다면 외환은행의 안전성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고, 또한 가능성은 낮지만 현대그룹이 구조개선중에 내어놓는 비주력 계열사를 론스타가 사들여 또 다시 시세차익을 이룰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구조개선에 따른 M&A에는 채권단의 타임스케쥴에 맞춰야 하기에 론스타가 유리한 조건으로 사들일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이든 분명 자사의 이익실현과 대주주의 이익실현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자본주의 시작에서의 '법'이다. 하지만 은행과 회사는 '경쟁관계'가 아닌 '협력관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면서까지 무리하게 추진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지금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은 40년 거래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파국으로 치닫고있다. 그 끝은 결코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다.....

2010년 7월 27일 화요일

The Screwtape Letters

혼돈이라고 묘사해야 하나, 혼란이라 묘사해야하나....
어떤 방식으로 묘사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결론은 놀라움의 극치.
사실, 이 책을 다 읽은지는 일주일이 넘었다. 하지만 다 읽었다고, 바로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거나, 가볍거나, 또는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깐, 작년 여름에 책 자봉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본디 나란 사람은 책을 많이 읽지 않았고, 그나마 읽는 책도 인문학 책 몇 권이나, 소설들이 전부였다.(혹자는 이 것도 많이 읽었다고 하겠지만...-_-) 집안 환경도 종교서적과 가까이 하기에 쉽지 않아서 아무래도 신앙서적과 접하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냥 단순이 책이 좋아 자봉일을 시작했다. 기독교서적에 맛 들린건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다.
책은 팔아야겠고, 아는 책은 몇 권 없었다. 내가 아는 책들은 어째 많이 보이지 않았다.
'신간들은 그렇다 치고 구간들은 어찌된거야?...'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던 때였다.
그때 한 선배가 몇 몇 책이 쉽다고 말씀하셨다.
쉽다고 하는 책들 몇 권과 내가 선택한 몇 권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책 뒤에 나와있는 서평도 슬쩍 컨닝해보고, 마음이 가는 책은 직접 읽어보면서 책을 조금씩 알아가길 시작했다.
그중 한 책이 바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였다.
사실 C.S. Lewis씨의 작품은 '순전한 기독교'를 익히 알고있었기에 그걸 먼저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 때는 책이 들어오지 않아, 대신 손을 댄 책이 이 책이다.
그 당시에는 무척이나 쉬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나니아연대기와 같이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동화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악마들끼리 주고 받는 편지의 형식을 띠는, 형식 자체로도 상당히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_-
내용은 편지의 형식을 두고 있지만, 사실 다른 각도로 본 우리의 모습을 재조명 하는 책이었다. 말도 어렵고, 한 문장을 해석하는데에도 한참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문장이 번역투로 되어있었긴 했지만, 내용 자체가 만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이 책이나, 순전한 기독교나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어떻게 선배들은 이 책이 술술 넘어가는 쉬운 책이라고 할까?

물론 술술 넘어가려면, 숲을 보듯 책을 보면 된다.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방향을, 그리고 이 책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 '환자'가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한 번 이상 읽게 된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문장 하나 하나를 음미해가며 읽을 때, 변화해야 할 내면이 보일 것이다.

나 자신을 보고싶다면 한번 건드려 보고 싶은 책.....
웜우드가 날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2010년 7월 17일 토요일

실패의 재 정의



항상 실패하고 산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
망치로 내 뒤통수를 맞은 느낌.........

잔인한 1년이었다. 아니, 잔인한 2년이었지...
시작하고 실패하고
기대하고 좌절하고
사랑주고 상처받고

하지만, 저 한마디....
YOU'RE ONLY A FAILURE IF YOU QUIT TRYING.

그래. 그러니깐 난 계속 시도하는거다.....
말 한마디에 상처받지 말고...
조금만 더 힘 내보자.
시작이다, 이제는...

2010년 7월 13일 화요일

마음 다스리기

아 정말로...
신물난다...

명분에 얽메이는 것들....
명분이라는 것에 정말로 집착하기보단
아전인수격 해석을 위해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들...


나도 한 때, 아니 지금마저도 명분에 이용했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통방식이 얼마나 더럽고 추잡한 것인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당한 보고를 두고 면피 씌우지말라는 사람과
해 주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

도움을 원할 때는 우리편이었다가
내가 요구를 할 때는 너네랑 우리랑 다른 것 아니냐는


그런 사람들.
이젠 질려.

이제는 나도 필요없겠지?

2010년 7월 8일 목요일

그 분의 말씀

그 분의 말씀을 듣는다는건 언제나 난해한 일이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도 사람마다 해석은 제각각이듯,
똑같은 말씀을 듣고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마음 밭 마다 전부 다른게 현실이다.
하물며 같은 기도를 한다고 해서 동일한 음성/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상황은 동일했다.
하지만 사람은 달랐다.
기도하는 내용이 달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 반대의 결과가 나와버렸다.

나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하고 싶었고.
그 친구는 더이상 연락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건강한 관계는, 서로에게 자유한 마음이 있을 때 형성되고 유지될 수 있다.
관계의 단절은, 한 사람이라도 상대방을 피하길 원한다면 형성될 수 있다.

하지만.....
유지되기는 어렵다.

왜냐면, 피하는 순간
미련이 생기기 때문이다......


단절을 지양하고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지향하는 이유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음에......
사람은 하루 하루 발전해 나가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결국 그 친구는 쓴 마음과 단절을 선택하였다.
그 분은 그 아이한테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모르겠지만...
나한테 말씀하신 것이랑, 왜 다른 것일까?...

뭐 어찌되었든 간에... 결론은
나에게 더이상의 선택권은 없다....


Abba가 부릅니다....
The Winner takes it all...



I don't wanna talk
About the things we've gone through
Though it's hurting me
Now it's history  
우리가 겪어 왔던 일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이제 모두 지난 일일 뿐이에요
 

I've played all my cards
And that's what you've done too
Nothing more to say
No more ace to play
모든 카드를 다 내놓았고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더 이상 쓸 에이스 카드도 없어요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That's her destiny
승자가 모든 걸 독차지하고
패자는 승자 곁에
초라 하게 남게 되죠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에요

 

I was in your arms
Thinking I belonged there
I figured it made sense
Building me a fence
Building me a home
Thinking I'd be strong there
난 당신 품 안이 바로
내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나를 막아줄 울타리를 쳐 주고
내게 집을 지어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그 안에서 굳건할 줄 알았어요


But I was a fool
Playing by the rules

The gods may throw a dice
Their minds as cold as ice
And someone way down here
Loses someone dear

The winner takes it all
하지만 규칙대로 따른
내가 바보였어요

주사위를 던지는 신의 마음은
냉정하기 그지 없어요
그리고 하늘 저 아래에서는
누군가 패배를 맞보게 되죠

승자가 모든 걸 독차지하고


The loser has to fall
It's simple and it's plain
Why should I complain
패자는 몰락할 수밖에 없어요
그건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건데
불평할 이유가 없죠



But tell me does she kiss

Like I used to kiss you
Does it feel the same
When she calls your name

Somewhere deep inside
You must know I miss you

하지만 내가 키스했던 것처럼

그녀도 키스해 줄까요
그녀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당신은 예전과 같은 기분일까요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당신을 그리워 한다는 걸 알 거예요



But what can I say
Rules must be obeyed

The judges will decide
The likes of me abide
Spectators of the show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까요
규칙은 규칙인 걸요

심판이 결정을 내리겠지요
나와 같은 사람은 그에 따라야 하고
경기의 관중들은



Always staying low

The game is on again
A lover or a friend
A big thing or a small
The winner takes it all
언제나 그렇듯 숨죽이고 있어요

또 다시 게임은 시작되고
연인이든 친구이든 크건 작건
승자가 모두 독차지해요

당신이 서글퍼 한다면


I don't wanna talk
If it makes you feel sad
And I understand
You've come to shake my hand
난 아무 말 않겠어요
당신이 나와 좋은 관계를 맺으러
왔다는 걸 나도 잘 알아요



I apologize
If it makes you feel bad
Seeing me so tense
No self-confidence
내가 이렇게 긴장하고
자신감 없는 모습에
기분 이 상했다면
미안해요

 

But you see
The winner takes it all
The winner takes it all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요
승자가 모든 걸 독차지한다는 걸요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해요

2010년 6월 18일 금요일

추억

내가 한때 소속되어있던 동아리의 클럽을 들어가고 있다.
일정상, 그리고 업무상 어쩔 수 없이 눈팅과 댓글질을 하고 있는데, 간만에 사진이 올라왔다.

그들의 사진을 보면서 추억에 잠겨버렸다.
내 과거의 한 조각이었던 그네들... 08 후배놈들은 한데 모여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저네들은 나란 존재를 기억이나 할까?ㅎ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들.
그들의 행복뒤에 선배들의 기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할까?


또 하나 생각을 했다.
07학번도 다시 저렇게 모일 수 있을까?.....
병현이와 인애 일로 힘들어지는 마당에
다시 모여서 히히덕거리며 떠들 수 있을까?...



비가 오니깐 별 생각이 다 든다.

이런날 차 몰고 인경호 꾸정물 한번 보고왔음 참 좋을 것 같다.....

2010년 6월 16일 수요일

훌쩍 떠나기 10일전

또 한바탕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여행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또 다른 여행으로 날 몰고가겠지.

그게 나의 모습이겠지.


자유롭냐고 물었지?

그러는 묻는 너는 자유하니?
답은 네 안에 있어.


자유로워지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의 의지인 것 같아.
내가 무시해버리고 신경안쓰면 그만이라고.

난 그걸 연습하고 있는 중이야.


날 더이상 얽메이게 만들지 말아줘.....

2010년 6월 10일 목요일

가로수 그리고 교회

어제 인천에서 온 친구를 선바위 역에 데려다주고 나니, 이미 시내버스 막차가 끊긴 시간이었다.
(양재방향에서 오는 버스는 사당방향보다 일찍 끊긴다.)

택시를 탈까 걸을까 하다가... 그냥 걷기로 작심하고 걷고있었다.
옛 길을 걸어오면서, '나무 한번 참 좋다'하고 생각하며 걷고있는데
갑자기 대머리 플라타너스가 보였다.

휑~하다

왜 플라타너스가 이렇게 모양새 이상하게 되어버렸을까 하는 의구심?

과천시청에서 나무 전지하다가 잘못해서?...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과천 시청은 나무의 키는 별로 관여하지 않는지, 전지를 할 때 아랫부분을 다듬지 윗 부분을 무식하게 잘라내지는 않는다. 결정적으로 서로 붙어있는 이 두 그루의 나무만 이런 모양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니 다른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의외로 답은 간단히 나왔다.
나무 뒷편에 건물이 있었고,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 두 그루의 플라타너스가, 다른 친구들처럼 풍성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으면 현수막들과 건물의 전반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슨 백화점 바겐세일 현수막도 아니고, 건물에 흉물스러운 현수막을 붙인 것도 모자라
현수막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 나무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놓다니...


교회가 뭔가 한참 생각했다.
내가 알고있는 교회는.....
지역사회에 스며들고, 사람들이 함께하는 교회다.

뭐 그리 대단한걸 광고하길래
30년 된 가로수를 저렇게 잘라내고
뭐 그리 대단한 행사를 하기에
주말이면 도로 갓길에 주차를 해서, 길을 기름 낀 혈관처럼 만들어 버리는지...


참 몹쓸짓이라는 생각만 든다, 이제는.
정을 주려고 해도 줄 생각이 안든다....

이게 무슨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라는 말인가.....
진정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라면....
설령 자신들이 자른 나무가 아니라도
나무 한 그루 더 심고
금전적인 여유가 된다면
공원도 조성하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나무 몇 그루로 그 교회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교회가 빛을 발하려면
자신을 세우는게 아니라
한걸음 더 낮아져서 섬기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 데에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Mark 5:13-16 공동번역 개정판

2010년 6월 6일 일요일

기도?

어떤 수행자가 부처님께 질문했습니다.
"부처님, 바라문들은 신에게 기도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악행을 하여도 기도를 하면 죄를 사하고 천당에 갈 수 있습니까?"
부처님은 그에게 되물었습니다.
"여기 깊은 연못에 돌을 던져 넣고 물가에 서서
'돌아 떠올라라'
하고 열심히 기도한다면 그 돌이 떠오르겠느냐?"
"아닙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물에 빠진 돌은 물에 들어가서 건져내는 것이 옳은 방법이며
그 돌을 아예 물에 집어넣지 않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이다."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잘못된 기도로 위안을 받기보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일입니다.

<장용철> 시인


여기서 말하는 바라문은, 힌두의 '브라만 (사제)'를 뜻한다.

우리는 저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지는 않을까?


수행자가 하는 말
부처가 하는 말

절대적으로 옳을 수도, 절대적으로 그를 수도 없다.
오직
한참 생각해봐야 할 뿐이다......

2010년 6월 1일 화요일

나 하나 선거 안 한다고 달라지겠어?

나 하나 선거 안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냐며
ㅌㅌㅌ 하고 놀러가시는 분들.......


08년도에 보고 뿜었던 결과ㅋㅋㅋㅋ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외국의 사례로 한번 가 볼까요?
1. 1645년,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은 단 1표 차이로 영국 전체의 통치권을 얻었습니다.(호국경으로 된 것은 추후의 일입니다. 그건 의회 해산을 통해서 된 것이었으니깐요)
2. 1649년, 찰스 1세는 제 2차 영국내전에서 패배한 뒤 재판에서, 1표 차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3. 1839년, 에드워드 에버렛(Edward Everett) 당시 메사츄세츠 주지사는 자기 자신이 투표를 하지 않아서 1표차이로 낙선되었습니다.

그리고....

1954년 일어난
사사오입 개헌 사건....총 재적의원 203명/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
계산상으로는 당시 의회의 정족수는 (203 * 2 /3 ) ≒ 135.33
즉, 정족수 미달로 부결되는 것이 맞지만, 사사오입이라는 억지 논리로 결국 가결되고 말죠.

물론 이 사건은 경우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그 만큼 한 표의 영향력은 막강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한 표가
세상을 좌우합니다.

2010년 5월 24일 월요일

친구

누군가와 내가 친구삼는다는 것은 항상 즐겁다.

하지만 내가 나이가 하나씩 넘어갈수록
마치 바를 정(正)의 한 획씩 그어갈수록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요하곤 한다.


어릴 때는 그저 동년배이기만 해도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니 나이는 친구사귐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서로 다름이 친구됨을 방해함을 느껴버렸다.

결고 이젠 아무와 친구하기가 쉬운 나이가 아님을,
자주 느끼는 시간이 와 버렸다.


하지만, 그 만큼
내가 친구라고 느끼는 존재에 대해
난 나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용기낼 수 있었다.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그런 무의미한 친구관계가 아니라
약하고 어려운 부분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것들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지금 내가
친구들과 가져야하는 관계라는걸,

아니 그렇게 관계하고 있는 사람이
나의 친구였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2010년 5월 16일 일요일

작년부터 이상한 연례 행사가 생겼다.
책 대량구입....-0-

10년 넘게 인터넷서점을 이용해온 호이도 이 날 만큼은 무거운 책 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다.
글쎄, 가격이 싼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다양한 책을 부담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인 것 같다.

뭐 교보문고나 인터넷 서점에 더 많은 책이 있겠지만,
책을 본 다음에 제목을 적어놓았다가 인터넷으로 주문해야하는 불편함이 따르고,
오히려 그런 익숙한 분위기보다, 박람회같은 시끌벅적한 시장통 분위기에서 책을 고르는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올해는 작년같이 따로 수입이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근무학교에 도서관이 있는지라 책을 많이 안 사겠다는 마음을 굳게 품고 왔지만, 결국에는 책 구매금액이 5만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이번 도서전에선 인상적인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작년에는 평일에 간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문학동네나 열린책들 같은 출판사에서도 붐비긴 했지만 책을 고르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는 사이의 통로를 지나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둘째로 기독교 부스가 많이 줄었다.
작년에는 기독교 부스가 상당히 많았다. 심지어 IVP(한국기독학생회 출판부)와같은 복음주의권 출판사도 있었으니 가히 다양한 부스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올해는 규장, 생명의 말씀사, 홍성사 이렇게 세 출판사만이 눈에 띄었고, 일부 무명 출판사들의 연합이 보였다.

반면 증산도와 관련된 출판사가 크게 성황을 보이고 학생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줄곧 접촉을 시도하는 것을 보았다.
IVP가 처음 하던 Booktable의 진화된 양상을 보는 것 같았는데, 그 주체가 증산도임에 조금 씁쓸했다.

물론 증산도가 이단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고 다른 종교로 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종교의 교리를 문제삼는 것 보다도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들에게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증산도 신도들의 열정에 탄복하고 자극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로 공정무역 커피 부스가 사라지고 스타벅스 커피가 들어왔다.
고작 나흘동안의 영업을 위해 라마조끄와 냉장고와 병음료들을 들여온 스타벅스의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공정무역에 관심이 있는 출판사나 기타 단체(아름다운 가게?)에서 정책적으로 부스에서 음료를 팔 생각을 했다면 사람들에게 공정무역커피를 알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스타벅스 만큼 전문적으로 손님을 상대하고, 많은 손님에게 최단시간에 커피를 제공할 수 있는 노하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아쉬움이 든다.


뭐 어찌되었든 간에 한 해동안 읽을 책이 수북히 쌓여버렸다...^^

2010년 4월 29일 목요일

아직도 벽이 있구나........
이젠 그 벽좀 무너뜨리자, 제발...

2010년 4월 24일 토요일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 떠나보내고

그 분을 조용한 곳에 모시고,
또한 떠나보내드렸습니다.

갑작스럽게 소천하신 그 분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그리고 아버님/아드님/따님 이 세 분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떠나가실 적에 제가 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 분의 묵직한 모습을 제가
들고 걸어나갈 때

그 분의 무거운 마음까지도 느껴졌습니다.

그 분의 무거운 마음은 이제
하늘의 품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그 분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2010년 4월 16일 금요일

사랑이 올까요(feat. 백지영) - 마이티 마우스


내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 온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그녀.
한 순간에 불 붙었다가, 갑자기 사그라든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돌아온 것은 재수 끝 무렵이었다.

그녀는 정말 화려하지도, 집중 조명을 받지도 않고
조용하게 컴백했다.

그리고 다시 타올랐다.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의 노래는 열에 여덟은 사랑 노래다.
그 노래가 나의 상황과 연관이 없더라도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비단 그녀의 가창력 뿐만 아니라,
목소리에 녹아나오는 진실함 때문일 터.......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새 노래가,
이제 나의 마음을 다시 흔들고 있다.

2010년 4월 12일 월요일

뛰는 가슴

분명...
가슴이 뛴다.

막 운동하고 난 다음 뛰는 심장처럼
내 가슴이 뛴다.

하지만 목적이 없다.
방향잃은 나의 가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한
희미한 목적은
내 삶을 이끌 수 있는 단 하나의




내 안에 있는 가슴은
날 뜨겁게 달구어준다.

2010년 3월 31일 수요일

[스크랩]20대는 왜 투표하지 않게 되었나

20대는 왜 투표하지 않게 되었나? [르몽드 디플로마띠끄]

기사중에서 "변화라는 것이 어떤 실체적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에 냉소했다."
결국엔 나 하나만으로 무엇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 채 냉소적으로 변한다는 것인데..

그리고 이런 정치에 냉소적인 것은 '각성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치에 계몽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씁쓸 했다.


이렇게 정치에 계몽되어있는 '나' 들이 모이면 말 그대로 실체적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을텐데...
왜 이렇게 무감각할까?

구글 그룹스

친구들이랑 여행가는 것을 계획하기 위해 구글 그룹스를 사용하고 있다.
원래 나름 클럽에서 누군가가 제안하는 것을 보고, 한번 호기심에 쓰는데

애들 반응이 처음엔...
생소하다는 반응인데,
가입없이 이메일 만으로도 서로 간단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해지는가 보다.


비도 오고....
찌부둥 한데
할 거리가 생기니깐 진짜 즐겁다!ㅎㅎㅎㅎ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Turning Point

나에게 있어서의 전환점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나에게 있어서 전환점이 된다.


내 하나의 결정이...
내 조그만 용기가

이 순간의 전환점이 된다.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버리는 용기.
소시민적 삶을 버리겠다는 결정.

그 습관으로 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2010년 3월 9일 화요일

안녕?!

진심으로 외로워지는 날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단지 외로움을 즐기는 것 뿐.



자자.
나의 심연속으로 들어가서
날 끌어내본다.


감기야 나아라
마음아 나아라
호이야 날아라

더 이상 제약받지 않고
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면서
널 잠재우렴.


2010년 2월 27일 토요일

사라지기

학교에서 내 자리가 사라졌다.
이 상황은....
갈 곳 없이 떠돌 나의 미래를 암시할까
아니면 자유로운 생활을 암시할까......


20일 동안만이라는데.........
걍 영원히 사라졌으면....하는 생각이 든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집안에서 책 정리를 하다가....

책 정리를 하다가 보니깐....
예전에 마음에 들었던 글을 옮겨놓은 쪽지를 발견했다.

결심은 그 약속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척도이다.
자신에게 진지한 결심은 무엇인지, 그것이 왜 진지한 결심인지 알지 못하면 거대한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을 때 쉽게 좌절한다. 따라서 외부에서 안정을 구할 경우, 일이 순조로우면 흥분했다가 그렇지 못하면 절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인생의 시작과 중지버튼을 남의 손에 맡기면 인격 형성기 때 자리 잡은 스스로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깊어진다. 그렇게해서 잘못된 욕망이 생기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되며, 잘못된 문제와 고통을 겪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진정한 자아와 끊임없이 어긋난다.


내 상황을 위한 글로 보이는데, 너무나도 답답함이 앞섰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날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뒷장에 적혀있던 다른 글은....
나에게 또 하나의 충격을 준다.


초과 업무를 통해 삶의 방식을 바꾸겠다는 욕망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보여준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집착하면 욕망은 즉시 내면의 힘을 크게 약화시키며, 온갖 감정이 당신을 갉아 먹을 것이다.
결과에 초연하라는 것은 당신의 가치나 목표를 타협하라는 뜻이 아니며, 오히려 원하는 바를 실현하도록 돕는다. 초연하지 못하면 부담과 스트레스를 야기해 결국 건강마저 해치게 된다.

난 뭐하고 있던거지 지금껏?ㅋㅋㅋㅋㅋㅋ........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Facebook...

이젠 페이스북까지 만들었으니....
네이트온도 접고 MSN으로 갈아타면 되는건가?ㅋㅋㅋ
퓨퓨....
깔끔/간결한게 마음에 든다.
군더더기가 많은 싸이와는 다른 무언가가 좋음...^^

2010년 2월 14일 일요일

교회..ㅡㅡ

나 교회 안 옮겼거든요?
출석교회 없거든요?

누가 이리도 제 말을 와전하고 다니는건지
도대체 화가나네요.

2010년 2월 10일 수요일

고민 그리고 정리

고민을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 속이 후련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민은 시작은 있으되 끝이 없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보통은 거의 그러하다.


반년 정도 방황아닌 방황이 찾아왔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
그 속에서 발견하지 못한 자아의 모습들.

그게 바로 나의 실제 모습이었을까?.... 어수룩한 나의 모습들.

그 어느 곳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공동체에서는 왜곡된 모습으로 나를 투영해야 했고
집에서는 방황하는 아들로
근무지에서는 독특한 사람으로 보이기만 했다.

그래. 그게 나라고 한없이 다독이면서 실제로 이루어진것은 전무했을 뿐


-----------------------------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결과만을 제시하는게 아니라
그에관한 근거를 내세워 줬으면 내가 인정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그저 2년동안의 방출이라는 결과뿐.

밑도 끝도 없는 결과물을 나에게 통보한 채 나에게 변화된 어떠한 모습을 강요했다는 것 자체가 하염없이 눈물흘리게 만든다.

나라는 사람은...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공동체.
난 그런 공동체를 꿈꿔왔을 뿐이었다.

창조와 창의력에 선은 없다.
Line makes Limit....
선은 한계를 만들어낼 뿐....

설령 존재하더라도....
서로간에 합의하에 만들어지는 것이 진정한 '선(線)'이라는 것을....


물론 때로는 부르심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의 이러한 외로움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다독이곤 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영영 떠나라는 의미였을까?
부르심엔 확신이 있어야한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몇 있지만,
요 근래의 생각으로는.......
' ..... ' 만 남기게 되어버린다.

한 출판사의 대표로 돌아간 분과 짧고도 긴 시간동안 대화를 나눴다.
어떤 지향점으로 내가 가야한다고 할지라도
인생은 일직선이 아니라고 말한다.
미사일이 계속 궤도를 수정하면서 날아가듯.....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지금 시점에서의 인생은
궤도 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기존의 가던 길을 가지 못한다는 슬픔에서 벗어나
새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사실.
그 사실을 두려워하지 말자.




.....
이제서야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2010년 2월 3일 수요일

Gaga medley


Pianist J-Yong's own rendition of a Lady Gaga medley
-Paparazzi
-Bad Romance
-Speechless

싸돌아다니다가 얻은 뜻밖의 자료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2010년 1월 29일 금요일

개독이라고 바라보는 시선들.......

매번 단순히 스크랩만 하다가, 오늘은 글을 좀 끄적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글 하나만 먼저 보세요.

글은 Nate에서 보았고, 원문은 경향신문입니다.
스님 한 분이 폭행당했고, 가해자는 경찰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왠만하면 폭행이란 단어가 아니라 '싸움'이라고 하려 했는데, 술취한 분이 스님을 때렸다고 하시길래, 기사 그대로 폭행이란 단어를 선택하였습니다)

뭐 기사에서 나오는 것 같이 '배경'이 어떻고 저떻고 간에, 여기서 Fact는 경찰이 승려를 때린겁니다.

그러면 제목에서 나오는 '개독'과 어떻게 연관이 될까요?....

끄적끄적 써내려간 댓글을이 더 당황스럽습니다.

물론 여기에 베플로 선정된 분들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아닐껍니다.
편향된 생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두 번째 댓글에 "제발 봉사활동 이미지로 모든 죄를 덮을 생각 꿈에도 생각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납니다.

왜 이런 글이 난무하고, 우리는 강건너 불구경 하면서 있는건지.


우리는 분명 두 가지 일을 간과하고 있는겁니다.

하나는 우리를 비판/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만큼 우리가 세상속에 스며들지 못하고 있어용. 침묵하고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뭔가 변하라는 말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위치에서
한번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본다면.....
우리의 문제를 조금은 느낄 수 있겠지요.



제 블로그에는 '스며들다'라는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데...
저 자신도 세상속에 스며들 자신이 없기에 내걸은 이름입니다.
나 이외의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섬길 수 있도록....

그런 제 블로그의 이름이
오늘따라 부끄러워 지네요.....

                                                                                                     
기사 출처 Nate / 경향신문

Haiti



기가막혀서.... 휴
인터넷이 온통 이 뉴스때문에 정신이 없다.


그래.
기자가 편향 보도를 하였던 간에, 아니면 진짜 그랬던 간에.....

어디 한번 두고보자.
MBC가 오해를 한 것이면 깔끔하게 기자가 사과방송 한번 하는걸로 끝나는거고.
진실을 말하는데 Net心을 상대로 플레이 하는거면.......
크게 한번 엎겠지요.


그런데 말이죠.
만약 MBC에서 오해를 했다면....
전 그 다음행동이 정말 기대됩니다.

깔끔하게 정정보도를 하는지, 아니면 어떤 신문들 처럼 입 삭 닦고 딴청피는지.
기대된다 기대 되.......-_-

2010년 1월 25일 월요일

Hoide의 의미?!

hoide가 뭐에요?
ㅎㅎㅎㅎㅎ

누가 뜬금없이 묻더라...-_-


음.....
Hoide = Hoi + de의 합성어랄까?

Hoi는 알다시피 내 또 다른 이름이고,
de는 的 의 한어병음...

한어병음이 뭔지, 왜 그렇게 de라 쓰는지 이런걸 물어보면
생각도 나지않는 중국어 지식을 들먹여야 하는지라 패스~

anyway

的(de)는 소유격을 나타낼때 쓰기도 하는데,
결론은 Hoide=Hoi的 = Hoi의

따라서 hoide.egloos.com은

호이의 egloos.com이라는 지극한 평범한 뜻이 되어버리는게죠.


아.......
이놈의 궁시렁
뭐 그리 하고싶은 말은 많은지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면 만사가 편한것을.....
에구

누구도 보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 하나로
안녕히 있으라는 말을 할 수 있는거다.

안녕 나의 공동체
   안녕 나의 친구들
      안녕 나의 그사랑


안녕 세 번에

내가 변해버렸다...


ㅎㅎㅎ

짧고도 긴게 바로 이런 것들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생각의 차이





생각의 차이가 날 바꾼다.






From....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103391&no=17&weekday=fri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관심...

다른거 다 필요없다......
가만히만 있어달라...

독신에 은사가 있다...


독설인지....
칭찬인지......


하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름을이해하지 못했고
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 또한 그의 관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친 내 모습에서 나는 가슴을 조일 뿐...


결국에는 혼자라는 그 말.....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그 말.....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는 날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이해하기 싫었다......


그의 우는 얼굴이 눈에 밟혔지만...
내 옆에서는 더 울어야하니깐.....
계속 그래왔으니깐....

왜 내가 나쁜놈이 되어야 하는걸까......

그리고 그 힘듦을 당연하게 여기는걸까...


도대체 그가 말씀하신 Let it be라는 말이....
어떤 말이었을까....

난 내버려 둔 것일까?
아니면 가로막은 것일까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이란 영화에서....
인간의 계속되는 선택에 지친 노인네의 절규가.....

결국 내 이야기라는 것일까?.....


갑자기 다른 의미의 reset버튼이 생각한다....
걍 내가 죽어버리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걸까?.......

2010년 1월 15일 금요일

Somebody says....Let it be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And in my hours of darkness
She is standing bright in front of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When the broken hearted people  
Living in the world agr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Though they may be parted
There is still a chance that they will se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When the night is cloudy  
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
Shine until tomorrow  
Let it be.

I wake up to the sound of music  
Mother Mary comes to me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다마고찌

다마고찌, 디지몬 어쩌구저쩌구....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계들

지금이야 Nintendo DS와 PSP가 그 자리를 대신해주고 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저들이 최신이었다.


화려한 색상도, 터치도, 게임도 없었지만, 버튼 몇 개 만으로
내장된 어떤 생명체를 키우는 즐거움을 난 누릴 수 있었다.


그는 날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그가 버튼을 누르면, 내 앞에 먹을게 나타나고
그가 버튼을 누르면, 내가 잠을 자고.....

그가 버튼을 누르면, 내 삶을 새로 시작한다.

Reset이라는 다섯 글자.
영어를 모르던 철 없는 나이지만, 그게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Reset버튼을 만지작 거리고 있으신 것 같다.
내 삶과 정신이 하루에도 수백번씩 하늘과 땅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훅 눌러버리시든
아니면 깔끔하게 손을 떼시든

당신 뜻하는 대로 한번에 이루어주셨으면 좋겠다.
결국에 난 당신이 지으신 존재고, 당신을 통해 연명하는 존재이니....

더이상의 괴로움을 나에게 주지 않으셨으면......




Jan. 14th, 2009
Hoi

우울, 그리고 실족, 그리고 글 쓰기.

항상 내가 쓰는 글은 무언가 딱딱하다.
어디선가 봄직한 말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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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앞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월간 잡지가 하나 있다.
근 3달만에 펴보는 잡지다.

NIV는 사라진지 오래고, 영문판으로도 좋아하지 않는 Message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실려있었다.

한숨을 쉬고... 책을 덮었다....
문서세단기로 책을 가져갔지만, 큰 숨을 한번 쉬고
도로 덮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내가 그 책을 열 일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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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을 보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결국엔 각자의 삶에 열심일 뿐이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람을 찾고, 사람을 멀리하고, 사람을 분별할 뿐이다.

이전에 주기도문의 말씀을 들먹거린 적이 있다....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하지만 그가 말씀하시고 그가 용서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정체모를 무언가에 대해 증오를 하고 있다.
결국 나도 하나의 인간이었고,
단순히 나의 의지로 덮어둘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상황 앞에 무너진다는 것에 어떤 것인지...
인간이란게 얼마나 허망한 것들인지...

결국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 자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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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1일 월요일

영향력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길 원한다.
나 역시 피할 수가 없었다... 영향력의 유혹을....

하지만, 딱히 악한 의도로 후배나 친구들에게 그런 말들을 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 친구에게 공동체를 향한 열망이나 기대감을 내가 단칼에 날려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이런 피해의식 따위는 나에게서 끝나야만 하는데....
내가 허튼소리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몰려온다.


휴대폰이라는 연결고리를 끊은 만큼.....
그런 불신과 피해의식의 고리도 끊어야 하는데...

그걸 잊고 있었나보다.
그게 전부가 아닌데...

미안하다...

수련회의 기쁨
은 기쁨으로 남겨놓으렴;;ㅎ

휴대폰 따위

7670-5775 번호따위는 해지한지 오래....

연락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Email로 연락하세요~

2010년 1월 9일 토요일

나를 집어넣는다. 나를 내려놓는다...

내가 중요시 여기던 것들을 내려놓기.
온전히 의탁하는 법을 익히기

관계를 중요시하던 나를 버리고,
새 삶을 시작하기.

그 시작....

첫 번째....
Sink..................

2010년 1월 1일 금요일

새가족교회 떠나는글...

안녕하세요.
호형이에요.

크리스마스 예배도 끝나고, 용산에서의 예배도 다들 잘 다녀오셨나 몰라요~
일찌감치 얼굴만 비추고 자리를 떠서 많이 아쉬웠어요~^^;;

아마도 여러분을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만나는 것은 마지막인 것 같아요~
오랜 기간동안 교회를 떠나있었는데, 다시한번 교회를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첫 교회를 떠나고 이 교회를 왔을 때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주은혜교회라는 교회에서 어린마음에 (몸이 아니라 신앙이요~^^) 아픈 마음에서 교회를 떠났는데,
떠난 절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신 곳이 새가족교회였습니다.


매일 포도주(스)와 빵으로 마무리하던 예배도 기억에 남고,
따로 교역자 없이 정말 좋은 말씀이 오고가는 것도 가슴에 남고


하지만 그런 추억을 뒤로 한 채, 2009년을 끝으로 교회를 떠나려고 합니다.

제가 어려울 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신현기 선생님과 황혜영 선생님
그리고, 저를 챙겨주신 새가족교회 가족들...

또 동생이면서도 잘 챙겨주지 못한 규식이
아픈 기억만 남기고 가는 재진이형 까지...

모두들에게 죄송하고 아쉬울 따름입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종종 찾아뵙겠습니다...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