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왜 투표하지 않게 되었나? [르몽드 디플로마띠끄]
기사중에서 "변화라는 것이 어떤 실체적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에 냉소했다."
결국엔 나 하나만으로 무엇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 채 냉소적으로 변한다는 것인데..
그리고 이런 정치에 냉소적인 것은 '각성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치에 계몽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씁쓸 했다.
이렇게 정치에 계몽되어있는 '나' 들이 모이면 말 그대로 실체적 변화를 끌어낼 수도 있을텐데...
왜 이렇게 무감각할까?
20대가 "정치에 계몽되었다"는 건, (자기자신을 포함한) 대중이 절대로 충분히 계몽될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는 의미 아닐까? 나는 우리가 넘쳐나는 정보를 통해 가지게 되는 것이 결국 의견이 아닌 편견임을 스스로 알고 인정하는 것을 "정치적 계몽"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정치에 냉소적일 수 밖에 없는거고. 우리는 언론의 수다가 아닌 진실에 근접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실제적으로 개인은 모든 분야에 전문가일 수 없고, 또 전문가의 컨설팅을 손쉽게 의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으니까. 개인의 힘으로 굳이 하려면 못할 건 없겠지만 비효율적이겠지. 그리고 그 모든 작업들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학업과 일들을 포기하면서까지 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하지. 이러한 '나'들이 모인다면 정말 실체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
답글삭제@incipit - 2010/04/19 12:53
답글삭제그럼 그에 대한 대안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난 그 대답도 좀 듣고싶다...
흠
내가 좀 오해의 소지가 있긴 했다.
정치적 계몽된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한다면...
좀 더 다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껀데....
그 말을 하고싶었는데, 단순히 '모이기만 해서' 이 결과가 나올꺼라고 생각했구만;;ㅋㅋㅋ
@incipit - 2010/04/21 15:14
답글삭제음.
제정신으로 댓글을 단 것 같아.
ㅎㅎㅎㅎ
아 지금 졸려서 제정신이 아니라 댓글을 멀쩡하게 달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답글삭제저런 식으로 정치적으로 계몽된 사람은 그냥 냉소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어. 정치적으로 계몽된 사람들은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당연히 관심도가 높을 뿐더러 절대적으로 자신의 권익을 지키고 싶어하지. 하지만 그 이외의 사안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정치라는 것이 하고있는 일과 학업, 또는 하고 싶어하는 일보다 결코 우선순위에 놓일 수 없어. 자신의 권익이 침해받지 않는 이상 자신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문제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거지.
대안이 필요하다면 정치전문가의 양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 이미 우리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지만 내가 말한 의미에서의 정치적으로 계몽된 사람은 좌파나 우파에 비해 소수일 수 밖에 없겠지. 하지만 대안으로서 필요한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소수야. 정치전문가는 일개 시민의 시점과 통치자의 시점, 쌍방을 가지고 그것을 경우에 따라 균형을 유지해가며 쓸 줄 아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어야하겠지. 단순히 정치적으로 계몽되었다고해서 정치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정치가 아예 자신의 일이 되어서 시간을 온전히 다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하고.
나는 민주주의를 신뢰하지않아. 모든 국민에게 통치능력이 있다고 믿지도 않아. 학계에서 뛰어난 이론물리학자라는 것이 정치에 눈이 밝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하지. 그래서 나는 정치전문가가 정치를 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그것을 계급주의라고 보지않아. 좋은 사회는 어차피 좀 더 적극적인 자, 정직한 자, 지혜로운 자, 재능이 있는 자가 지도적인 지위에 임할 수 있는 사회 아닌가? 사람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하는거지 모든 걸 잘해야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건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정치전문가의 양성을 어떻게 이뤄나가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잘 몰라. 나는 사실 대학의 정치외교학과가 그러한 기능을 해주길 바랬는데 현실에서는 그다지 -_-;
나는 그냥 냉소적인 삶의 방식을 선택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