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님의 Tweet을 읽다보니, 딴 생각이 든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
혼자선 할 수 없는 일... (함께할 수 있는 일...)
그래.
일을 나누자면 두 범주로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똑같은 업무강도라도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래...
혼자서 할 일을 선택하겠지.....
서로의 의사소통마저 귀찮아하는 어이없는 세상...
그게 바로 우리인걸 어떻하는가.....
애들이랑 나가서 노는 것 보다도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집에서 가족들이랑 이야기하기보단 앉아서 TV와 컴퓨터를 하고
의견차이가 생기면, 대화로서 풀기보다는 고성과 폭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그게 바로 우리의 현 주소인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선호해보자.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서로를 소망하게 되는
그런 모습을
지향하는 우리를
기대해도 될런지....
2010년 11월 10일 수요일
2010년 11월 9일 화요일
'종교다원론자 변선환',사후 10년만에 사실상 복권되다 - 최서영 [프레시안 2005.09.05]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몰고온 생지옥에 절규하는 미국 뉴올리언즈 주민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수십만 명을 사망케 한 서남아시아의 쓰나미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망언으로 새해 벽두부터 논란을 일으켰던 개신교 감리교단의 대형교회, 서울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다.
타인의 고통을 두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판'으로 둔갑시켰던 그가 기독교 국가에서 일어난 이번 재앙을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김 목사와 관련해 생각나는 일 또 한 가지. 그의 비상식적인 '쓰나미 심판론'은 즉각 인터넷을 타며 비난 여론의 표적이 됐지만, 그가 10여 년전 "기독교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교리를 부인했다"며 '출교(黜敎)'를 주도했던 한 양심적 신학자의 복권에는 훨씬 더 긴 세월이 걸렸다.
당시 김 목사 등의 여론몰이에 '출교' 당했던 고 변선환 감신대 학장은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신학적인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했던 것. 종교간 화해와 다원성에 대한 그의 주장은 성전(聖戰)의 이미지를 차용한 전쟁과 테러리즘으로 피범벅이 된 오늘날의 세계에도 충분히 유의미하게 읽힌다.
그리고 바야흐로 한 신학자가 온몸으로 뿌린 밀알은 현재 한국 기독교계의 강력한 근본주의적 토양을 뚫고 힘겹게 새싹을 밀어올리는 중이다.
1992년, 유례없는 한국형 종교재판과 '출교'형
13 년전인 1992년 5월 7일, 감리교 서울연회 재판위원회(재판장 고재영 목사)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부인했다"며 변선환 당시 감신대 학장에게 감리교회법상 최고형인 '출교' 형을 내렸다. 이는 중세의 '파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교인의 자격을 빼앗고 당사자를 감리교단 밖으로 내보내는 형벌이었다.
보수교회 목사들이 주도한, 감리교단의 이 '한국형 종교재판'은 한국개신교 200년 역사상 유례없는 것으로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으며, 재판 결과에 반발하는 감신대 학생들과 상당수 목사들로 감신대는 장기간 분규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변 학장은 최후진술에서 "흑백논리만이 횡행하는 감리교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기독교는 더 이상 정복자의 종교가 아니며 전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종교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감리교의 세계적 추세"라고 역설했다.
"타종교를 무조건적으로 악마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개종 중심의 선교 신학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다. 지구촌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현실과 그 진리성을 인정하되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종교를 배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새로운 신학이 정립돼야 한다"는 그의 신학적 양심에 한국 감리교계는 '사탄의 종'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였다.
'다른 종교에도 진리는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는 2000년간 배타적 선교 정책을 고수해 온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 여전히 당혹스런 과제였으며, 더욱이 '교회 안에서만 들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대한 독점중계권을 쥐고 있었던 목사들에게는 실질적인 '위협'이었던 것이다.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는 '적'이 필요했다"
' 다름이 곧 틀림이 되는 차이'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확보하는 모든 근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 또한 '적'이 필요했다. 또한 '우리'와 '저들'간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자 역시 '사탄'이 되어야 했다. 변선환 학장은 그렇게 '사탄'이 되고 말았다.
당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매주 발행하는 <불기둥>이라는 팸플릿에서 "한때 수천 명씩 모이던 구라파 교회들이 관광 장소로 전락한 것은 수십 년 전부터 횡행하던 다원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사탄 때문"이라며 합리주의, 사회복음 운동, 실존주의 철학, 행동주의 신학, 과학적 방법 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사상가들을 공산주의자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으로 가면 좋으련만 가지 않고 국가를 혼란케 하는 것이나 기독교의 탈을 쓴 무신론자들이 교회 안에 존재하면서 파괴하려고 드는 것은 사탄의 간계"라며 "이들이 교회 밖으로 나간다면 학문의 자유를 가지고 무슨 소리를 하든 개의치 않는다"고 성토했다.
그의 논리 안에서 교인의 숫자는 사탄의 득세와 반비례하며, 교회 밖의 '적'은 오히려 교회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교회 안의 이질적 목소리는 용납 못한다는 폐쇄성과 극단적인 이분법이 가득했다.
그 러나 변 학장의 후학들이 최근 펴낸 추모논문집 <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대한기독교서회)에서 최대광 감신대 교수는 "복종보다 합리적 사고를, 개인구원보다 사회복음을, 내면적 초월성보다 사회참여를 중시한다면 보수교회들은 이를 여지없이 교회를 파괴시키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신학으로 딱지 붙이며 대중을 훈련시켰다"며 "변선환 학장은 정확히 이 대척점에서 자아와 타자의 차이를 해소하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종교는 무섭지 않은데 한국 교회는 무섭다"
이렇게 개신교의 배타성과 종교간 갈등에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고 변선환 학장은 1927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자랐다.
감 신대와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을 거쳐 미국 드류대와 스위스 바젤 신학부에서 공부한 그는 칼 야스퍼스, 불트만등의 신학 사상과 선불교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으며 한국에 돌아온 1970년대 후반부터 국내의 대표적인 불교철학자 이기영 박사와의 폭넓은 대화를 통해 기독교와 불교 등 모든 종교의 공존 가능성을 역설했다.
또한 80년대 초 자신의 신학적 관점이 여전히 기독교를 불교, 유교와 같은 아시아 종교보다 우월한 위치에 두는 서구적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한국에서 신학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성찰해 "기독교 혹은 서구에 감겨져 온 한국 종교가 거꾸로 한국의 다양한 종교에 되감겨져야 한다"는 '토착화 신학론'을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학국적 신학이 타파해야 할 우상으로서의 배타적인 교회 중심주의를 비판한 것은 물론이다. 그는 "교회 자체를 계시와 은총의 통로로 이해함으로써 세상과 교회의 단절을 초래하게 됐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티없이 파아란 가을하늘이 고운 5일, 변 학장을 기리는 사람들이 '서거 10주기'를 맞아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 웨슬리 채플에 모였다.
감 신대의 총동문회(회장·최성봉 목사)와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소장 이정배 교수) 주관 하에 열린 학술강연회에는 고인을 위해 후학들이 마련한 추모논문집 <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도 선보였다. 그의 뜻을 잇는 제자들이 '변선환 아키브'를 만들어 그의 정신을 잊지 않고 연구해 온 결실이었다.
이들의 정성에 감신대의 김외식 총장, 이종복 이사장이 이날 변 학장의 10주기 추모 및 추모논문집 출간 감사예배에서 설교와 축도를 기꺼이 맡았으며, 개신교회의 원로인 강원용 목사와 이현주 목사가 각각 축사를 했다. 김경재 전 한신대 교수도 추모논문집 서평으로 동참했다. 변 학장이 '출교' 10년 만에 사실상 '복권'되는 순간이었던 셈이다.
제자들이 집필한 추모논문집 서문 중의 한 구절이 매섭다.
"선생님의 신학을 이단으로 정죄해 출교시킨 후 과연 감리교회는 성장하고 풍성해졌나. 이제 사람들은 최고 심판관으로 변신한 교회가 무섭다고 한다. 종교는 무섭지 않은데 한국교회가 겁이 난다고 한다. 신학자들도 글 쓰거나 강연할 때 교회 눈치 살펴야 할 지경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가장 기본적인 세상의 합리성과 상식이나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변 학장의 '사실상 복권'과 함께 우리의 개신교회는 이제 비로소 세상을 향해 자신있게 '회개하라'고 외칠 수 있는 출발점에 선 것인가?
최서영/기자
"수십만 명을 사망케 한 서남아시아의 쓰나미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망언으로 새해 벽두부터 논란을 일으켰던 개신교 감리교단의 대형교회, 서울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다.
타인의 고통을 두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심판'으로 둔갑시켰던 그가 기독교 국가에서 일어난 이번 재앙을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했기 때문이다.
김 목사와 관련해 생각나는 일 또 한 가지. 그의 비상식적인 '쓰나미 심판론'은 즉각 인터넷을 타며 비난 여론의 표적이 됐지만, 그가 10여 년전 "기독교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교리를 부인했다"며 '출교(黜敎)'를 주도했던 한 양심적 신학자의 복권에는 훨씬 더 긴 세월이 걸렸다.
당시 김 목사 등의 여론몰이에 '출교' 당했던 고 변선환 감신대 학장은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신학적인 천동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했던 것. 종교간 화해와 다원성에 대한 그의 주장은 성전(聖戰)의 이미지를 차용한 전쟁과 테러리즘으로 피범벅이 된 오늘날의 세계에도 충분히 유의미하게 읽힌다.
그리고 바야흐로 한 신학자가 온몸으로 뿌린 밀알은 현재 한국 기독교계의 강력한 근본주의적 토양을 뚫고 힘겹게 새싹을 밀어올리는 중이다.
1992년, 유례없는 한국형 종교재판과 '출교'형
| 80년대에 "종교의 우주는 기독교가 아닌 신중심",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故 변선환 학장의 대담한 '선언'은 당시 신학자들을 보수와 진보 혹은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로 갈라세운 신학적 분수령이 되었다. ⓒ변선환아키브 | |
13 년전인 1992년 5월 7일, 감리교 서울연회 재판위원회(재판장 고재영 목사)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부인했다"며 변선환 당시 감신대 학장에게 감리교회법상 최고형인 '출교' 형을 내렸다. 이는 중세의 '파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교인의 자격을 빼앗고 당사자를 감리교단 밖으로 내보내는 형벌이었다.
보수교회 목사들이 주도한, 감리교단의 이 '한국형 종교재판'은 한국개신교 200년 역사상 유례없는 것으로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으며, 재판 결과에 반발하는 감신대 학생들과 상당수 목사들로 감신대는 장기간 분규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변 학장은 최후진술에서 "흑백논리만이 횡행하는 감리교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기독교는 더 이상 정복자의 종교가 아니며 전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종교간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종교적 다원주의는 감리교의 세계적 추세"라고 역설했다.
"타종교를 무조건적으로 악마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는 개종 중심의 선교 신학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다. 지구촌에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현실과 그 진리성을 인정하되 종교간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종교를 배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새로운 신학이 정립돼야 한다"는 그의 신학적 양심에 한국 감리교계는 '사탄의 종'이라는 '주홍글씨'를 붙였다.
'다른 종교에도 진리는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는 2000년간 배타적 선교 정책을 고수해 온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 여전히 당혹스런 과제였으며, 더욱이 '교회 안에서만 들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에 대한 독점중계권을 쥐고 있었던 목사들에게는 실질적인 '위협'이었던 것이다.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는 '적'이 필요했다"
' 다름이 곧 틀림이 되는 차이'를 통해 자아 정체성을 확보하는 모든 근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의 근본주의 또한 '적'이 필요했다. 또한 '우리'와 '저들'간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자 역시 '사탄'이 되어야 했다. 변선환 학장은 그렇게 '사탄'이 되고 말았다.
당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매주 발행하는 <불기둥>이라는 팸플릿에서 "한때 수천 명씩 모이던 구라파 교회들이 관광 장소로 전락한 것은 수십 년 전부터 횡행하던 다원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사탄 때문"이라며 합리주의, 사회복음 운동, 실존주의 철학, 행동주의 신학, 과학적 방법 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 사상가들을 공산주의자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으로 가면 좋으련만 가지 않고 국가를 혼란케 하는 것이나 기독교의 탈을 쓴 무신론자들이 교회 안에 존재하면서 파괴하려고 드는 것은 사탄의 간계"라며 "이들이 교회 밖으로 나간다면 학문의 자유를 가지고 무슨 소리를 하든 개의치 않는다"고 성토했다.
그의 논리 안에서 교인의 숫자는 사탄의 득세와 반비례하며, 교회 밖의 '적'은 오히려 교회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교회 안의 이질적 목소리는 용납 못한다는 폐쇄성과 극단적인 이분법이 가득했다.
그 러나 변 학장의 후학들이 최근 펴낸 추모논문집 <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대한기독교서회)에서 최대광 감신대 교수는 "복종보다 합리적 사고를, 개인구원보다 사회복음을, 내면적 초월성보다 사회참여를 중시한다면 보수교회들은 이를 여지없이 교회를 파괴시키고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신학으로 딱지 붙이며 대중을 훈련시켰다"며 "변선환 학장은 정확히 이 대척점에서 자아와 타자의 차이를 해소하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종교는 무섭지 않은데 한국 교회는 무섭다"
이렇게 개신교의 배타성과 종교간 갈등에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고 변선환 학장은 1927년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자랐다.
감 신대와 한국신학대학 대학원을 거쳐 미국 드류대와 스위스 바젤 신학부에서 공부한 그는 칼 야스퍼스, 불트만등의 신학 사상과 선불교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으며 한국에 돌아온 1970년대 후반부터 국내의 대표적인 불교철학자 이기영 박사와의 폭넓은 대화를 통해 기독교와 불교 등 모든 종교의 공존 가능성을 역설했다.
또한 80년대 초 자신의 신학적 관점이 여전히 기독교를 불교, 유교와 같은 아시아 종교보다 우월한 위치에 두는 서구적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한국에서 신학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성찰해 "기독교 혹은 서구에 감겨져 온 한국 종교가 거꾸로 한국의 다양한 종교에 되감겨져야 한다"는 '토착화 신학론'을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학국적 신학이 타파해야 할 우상으로서의 배타적인 교회 중심주의를 비판한 것은 물론이다. 그는 "교회 자체를 계시와 은총의 통로로 이해함으로써 세상과 교회의 단절을 초래하게 됐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티없이 파아란 가을하늘이 고운 5일, 변 학장을 기리는 사람들이 '서거 10주기'를 맞아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 웨슬리 채플에 모였다.
감 신대의 총동문회(회장·최성봉 목사)와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소장 이정배 교수) 주관 하에 열린 학술강연회에는 고인을 위해 후학들이 마련한 추모논문집 <변선환 신학 새로 보기>도 선보였다. 그의 뜻을 잇는 제자들이 '변선환 아키브'를 만들어 그의 정신을 잊지 않고 연구해 온 결실이었다.
이들의 정성에 감신대의 김외식 총장, 이종복 이사장이 이날 변 학장의 10주기 추모 및 추모논문집 출간 감사예배에서 설교와 축도를 기꺼이 맡았으며, 개신교회의 원로인 강원용 목사와 이현주 목사가 각각 축사를 했다. 김경재 전 한신대 교수도 추모논문집 서평으로 동참했다. 변 학장이 '출교' 10년 만에 사실상 '복권'되는 순간이었던 셈이다.
제자들이 집필한 추모논문집 서문 중의 한 구절이 매섭다.
"선생님의 신학을 이단으로 정죄해 출교시킨 후 과연 감리교회는 성장하고 풍성해졌나. 이제 사람들은 최고 심판관으로 변신한 교회가 무섭다고 한다. 종교는 무섭지 않은데 한국교회가 겁이 난다고 한다. 신학자들도 글 쓰거나 강연할 때 교회 눈치 살펴야 할 지경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은 가장 기본적인 세상의 합리성과 상식이나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변 학장의 '사실상 복권'과 함께 우리의 개신교회는 이제 비로소 세상을 향해 자신있게 '회개하라'고 외칠 수 있는 출발점에 선 것인가?
최서영/기자
이웃 없는 종교의 우울함 - 김진호 [한겨례 2010.11.09]
[야! 한국사회] 이웃 없는 종교의 우울함 /김진호
자기중심점 편집증이 ‘미친 십자군들’ 불교 사찰 난입으로
이웃을 ‘적’으로…교회가 시민사회로부터 ‘왕따’ 당하는 이유
1991년 요맘때였다. 학문의 폭이나 깊이에 서 당대 한국 최고의 신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변선환 당시 감신대 학장을 정죄하는 교단 총회의 결의가 있었다. 즉각 교수들과 학생들,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의 항의와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또한 안병무·서광선·이재정 등 교단을 망라한 한국의 대표적 신학자들이 공동으로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21일, 대형교회 목사들이 중심이 된 대한감리교회 교리수호대책위원회가 발족하였고, 총회의 징계 결의가 준수되지 않으면 교단 분열을 각오한다는 성명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변선환 교수는 교수직을 면직당했고 목사직이 회수되었으며 출교 처분되어 교인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자행한 신학자에 대한 징계 사례 중 가장 극한적인 경우에 속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노신학자에게 이런 가혹한 처결을 교단 분열 운운하면서까지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신학적 신념이 자기들의 신앙관과 다르다는 이유, 놀랍게도 이것이 전부다.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그것은 “사탄과의 싸움”이었다.
도대체 저들을 그토록 격동시킨 신학적 신념의 내용은 무엇일까. 선생은 자기의 신학을 ‘타종교의 신학’이라 불렀다. 자기의 언어와 관행,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만남의 과정과 태도를 강조하는 신학이다. 해서 타종교를 자신과 닮도록 동화시키거나 타종교에서 자기와 닮은 요소를 찾아내어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의 언어와 관행을 존경하고 그 ‘차이’에서 서로 배움을 얻는 만남의 과정이 중요시된다. 나아가 종교들이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타자를 함께 바라보고 자신의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러한 성찰에 이르는 것에 관한 신학적 담론이다. 나는 아직도 그의 타종교의 신학이 종교간 대화모델 가운데 가장 훌륭한 관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감리교회의 교리 수호를 강조하는 목사들은 이러한 신학을 ‘사탄의 행태’라고 보았다. 물론 이것은 그 교단 권력자들만의 생각은 아니다. 한국 교회 일반은 자기 외에는 모든 신앙과 신념을 폄하하고 심지어 악마화하기도 했다.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런 고강도의 자기중심주의적 편집증을 신앙이라고 오인해온 사례가 무수히 많다.
바로 그러한 신앙적 편집증의 한 증상이 최근 몇몇 불교 사찰에 난입해서 그 종교를 모욕하는 ‘미친 십자군들’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물론 알다시피 이런 행동이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이제까지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런 식의 무례함을 수없이 벌여왔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신앙을 모욕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중요한 덕목임을 끊임없이 강변해왔다. 해서 수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이웃이 삭제되었다. 세상은 ‘우리’와 ‘타자’로 이분되었고, ‘우리’에게 동화되지 않은 타자는 ‘적’이다.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이 신앙의 문법처럼 한국 교회를 둘러싸고 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한국 교회 일각의 사고방식과 냉전적 국가주의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간의 끈질긴 밀월관계는 바로 이런 생각의 유사성과 결부되어 있다. 교회는 이웃을 적으로 상상하고, 한국 사회는 ‘우리’의 외부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교회와 국가의 극우 냉전주의자들은 공존의 논리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자기중심점 편집증이 ‘미친 십자군들’ 불교 사찰 난입으로
이웃을 ‘적’으로…교회가 시민사회로부터 ‘왕따’ 당하는 이유
1991년 요맘때였다. 학문의 폭이나 깊이에 서 당대 한국 최고의 신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변선환 당시 감신대 학장을 정죄하는 교단 총회의 결의가 있었다. 즉각 교수들과 학생들,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의 항의와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또한 안병무·서광선·이재정 등 교단을 망라한 한국의 대표적 신학자들이 공동으로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21일, 대형교회 목사들이 중심이 된 대한감리교회 교리수호대책위원회가 발족하였고, 총회의 징계 결의가 준수되지 않으면 교단 분열을 각오한다는 성명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변선환 교수는 교수직을 면직당했고 목사직이 회수되었으며 출교 처분되어 교인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자행한 신학자에 대한 징계 사례 중 가장 극한적인 경우에 속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노신학자에게 이런 가혹한 처결을 교단 분열 운운하면서까지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신학적 신념이 자기들의 신앙관과 다르다는 이유, 놀랍게도 이것이 전부다.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그것은 “사탄과의 싸움”이었다.
도대체 저들을 그토록 격동시킨 신학적 신념의 내용은 무엇일까. 선생은 자기의 신학을 ‘타종교의 신학’이라 불렀다. 자기의 언어와 관행,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만남의 과정과 태도를 강조하는 신학이다. 해서 타종교를 자신과 닮도록 동화시키거나 타종교에서 자기와 닮은 요소를 찾아내어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의 언어와 관행을 존경하고 그 ‘차이’에서 서로 배움을 얻는 만남의 과정이 중요시된다. 나아가 종교들이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타자를 함께 바라보고 자신의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러한 성찰에 이르는 것에 관한 신학적 담론이다. 나는 아직도 그의 타종교의 신학이 종교간 대화모델 가운데 가장 훌륭한 관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감리교회의 교리 수호를 강조하는 목사들은 이러한 신학을 ‘사탄의 행태’라고 보았다. 물론 이것은 그 교단 권력자들만의 생각은 아니다. 한국 교회 일반은 자기 외에는 모든 신앙과 신념을 폄하하고 심지어 악마화하기도 했다.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런 고강도의 자기중심주의적 편집증을 신앙이라고 오인해온 사례가 무수히 많다.
바로 그러한 신앙적 편집증의 한 증상이 최근 몇몇 불교 사찰에 난입해서 그 종교를 모욕하는 ‘미친 십자군들’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물론 알다시피 이런 행동이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이제까지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런 식의 무례함을 수없이 벌여왔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신앙을 모욕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중요한 덕목임을 끊임없이 강변해왔다. 해서 수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이웃이 삭제되었다. 세상은 ‘우리’와 ‘타자’로 이분되었고, ‘우리’에게 동화되지 않은 타자는 ‘적’이다.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이 신앙의 문법처럼 한국 교회를 둘러싸고 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한국 교회 일각의 사고방식과 냉전적 국가주의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간의 끈질긴 밀월관계는 바로 이런 생각의 유사성과 결부되어 있다. 교회는 이웃을 적으로 상상하고, 한국 사회는 ‘우리’의 외부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교회와 국가의 극우 냉전주의자들은 공존의 논리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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